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길한 꿈에서 깨어난 뒤,
자신이 끔찍한 벌레 한 마리로 변해 있는 것을 침대 속에서 발견했다.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소설의 첫 문장만큼은 기억하고 있는 소설이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각각 다르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 - 알베르 카뮈, 이방인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이상, 날개
프란츠 파프카의 소설 <변신> 역시 첫 문장이 유명한 소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첫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길한 꿈 속에서 깨어난 뒤, 자신이 끔찍한 벌레 한 마리로 변해 있는 것을 침대 속에서 발견했다."
소설 <변신>은 평범한 세일즈맨인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하룻밤 사이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끔찍하고도 기묘한 이야기입니다. 소설 첫 문장부터 덜컥 주인공이 벌레가 되어버린 이야기로 시작을 하니 독자는 주인공이 벌레가 된 원인도 과정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소설을 좀 더 재미있게, 실감 나게 읽기 원하시는 분이라면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끔찍한 벌레 중 하나를 생각하며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예를 들면 온몸에 잔가시처럼 털이 여기저기 솟아난 벌레, 다리가 수백 가지 달려 있는 몸이 아주 긴 벌레, 다리 보다도 더 길고 얇은 더듬이를 가지고 있는 벌레 등 여러분이 가장 싫어하는 벌레 종류를 생각하면 좋습니다. 그래서 전 누르면 '바스락'하고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아주 얇은 등껍질을 가지고 있는 바퀴벌레를 상상하며 읽어봤습니다.
그러나 팔과 손이 다 없어진 지금 그의 가느다란 다리들은 제멋대로 얽혀서 수선스럽게 움직일 뿐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소설 <변신>은 복잡한 인물구조나 다양한 공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소설은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며 이야기의 공간 또한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의 심경에 집중하여 서술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레고르의 심경을 세밀하고 자세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레고르는 물건을 판매하는 세일즈맨입니다. 그는 그의 가족 중 유일하게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레고르는 매일 출근을 하고 일을 하며 그 대가로 돈을 받아 생계를 꾸려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그레고르가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오지 않는 그레고르와 그의 가족 간의 관계는 점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오래전부터 그레고르의 부모는 그가 회사에서 착실하게 일하기만 하면 평생 동안 자기네 생활이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레고르와 그의 가족을 지켜보면서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역할"이었습니다. 한 개인은 많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지게 되는 역할의 개수는 점점 많아집니다. 우리는 모두 자녀이자, 부모이자, 친구이자, 회사원이자, 제공자이자, 소비자이자, 고객이자, 선생입니다. 역할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회 구성원과의 교류 혹은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역할은 개인의 정체성을 말해주는데 크게 기여하지만 그 개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역할은 언제든 변경될 수 있고 대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 <변신>은 정말 우리가 서로의 "역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소설은 개인의 역할이 개인 자체가 되어버린 순간 즉, 역할이 개인을 대체해 버린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레고르는 부모님의 소중한 아들이자 여동생의 미래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착한 오빠이자 회사의 충실한 직원입니다. 그레고르 주변의 모든 인물은 그레고르의 이 역할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이후 그레고르가 가지고 있던 역할의 숨은 수식어가 드러납니다. '나 대신 돈을 벌어 주어야만 하는' 아들이자, '집의 빚과 먹을 것과 내 학업을 책임져 주어야만 하는' 오빠이자 '회사의 수익을 위해 일해야만 하는'직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수면 밑에 있던 수식어가 물 위에 떠오르게 된 것은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해 경제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되었을 시점입니다.
식구들은 고마워하기는 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돈을 받았고 그레고르도 기꺼이 돈을 내놓았다. 그러나 따스한 마음이 특별히 오고 간 적은 없었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후 경제적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자 가족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의논합니다. 정말 이상한 의논입니다. 벌레로 변한 이유라도 알기 위해 병원에 가거나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해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그러나 가족은 의논을 끝낸 후 각자 돈벌이를 하기 위한 행동을 취합니다. 그리고 그레고르를 정말 벌레 취급하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에게 그레고르의 역할은 '돈', '생계' 딱 그 정도였던 것입니다. 역할이 역할을 다 하지 못하자 녹슨 못이 나무에서 빼내져 버려지듯 그레고르도 점차 버려집니다. 나중에는 자기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등에 큰 상처를 입습니다. 아무도 사과를 제거해 주지 않습니다. 가족들도, 그 자신 스스로도, 결국 등이 곪아 썩어질 때까지도 사과를 제거해주지 않습니다. 결국 아무도 제거해 주지 않은 사과는 그레고르를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그레고르의 등에 박힌 사과는 그 자신도 꺼내지 못했고 다른 누구도 꺼내 주지 않았다
역할이 개인을 대체할 때 개인은 사라집니다. 인간성이 사라지는 순간은 바로 이 시점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시점은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인간성이 사라지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접하나요. 고객이 직원에게 폭언을 하는 모습, 학업의 결과로만 학생을 판단하는 모습, 길거리 한복판에서 주먹다짐으로 싸우는 모습, 끼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아가 보복운전을 하는 차들 등 수많은 시점이 존재합니다. 상대방을 하나의 개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할로 치부해 버리며 역할에게 퍼붓는 행위들이지 않을까요. 그레고르가 더 이상 돈을 벌어오지 못함으로 온 가족이 그를 버렸던 것처럼요. 가족이 그레고르에게 던진 것은 사과였지만 사실 실망감을, 욕설을, 모멸감을, 죽음을 퍼부었던 것과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정말 충실했습니다. 가족들이 그레고르가 돈 버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는 더 묘사되지 않지만 어쩌면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회사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도 모른 척 눈감았을 것 같습니다. 그저 역할에 충실하길, 기대에 부응하기만을 바라면서요. 가족뿐 아니라 회사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세일즈맨으로서 회사에 수익을 더 많이 가져오기만 바랐을 겁니다. 그레고르의 일에 대한 고민, 지침, 쉼에 대한 마음은 외면했을 것입니다.
죽은 그레고르의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야위어 있었으며 뱃가죽은 등허리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몇 개의 역할을 가진 채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그 역할은 너무 소중해서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합니다. 아마 모든 사람이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니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보아주길 바라봅니다. 그 사람도 그 역할은 처음이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기가 평생 누워만 있지 않듯이 언젠가 뒤집는 단계를 넘어 기어가다, 걸어가다, 마침내 부모님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되듯이 서로의 모든 역할을 축하하고 존중해 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음악 소리에 감동을 느끼는데도, 내가 벌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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