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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도서 리뷰]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 헤세의 성장소설 그 첫 번째 이야기

by 제이네스(Jness)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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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 수레바퀴 아래서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에 깔리고 말테니까.

 

▣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와 작가 <헤르만 헤세>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독일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명인 헤르만 헤세의 소설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성장 소설의 작가'로도 불립니다. 그의 저서 <데미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헤세는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고뇌하며 얻은 고민을 책으로 써낸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국가주의의 극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사회적 분위기와는 다르게 평화를 사랑하는 반전주의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기독교 선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엄격하고 규율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정작 헤세는 창조와 자유를 좋아하는 소년이었습니다. 자신의 성품과 성격과 반대되는 환경에 놓여서였을까요, 헤세는 성장하는 모든 순간에 고민하고 또 고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경험은 책을 통해 표현됩니다. 

 

헤세의 대표적인 저서는 세 가지입니다. <데미안>, <싯타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그리고 이 3가지의 책은 그의 성장기를 보여주기에 순차적으로 배열하면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타르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자전적 소설입니다. 헤세의 성장 배경, 경험, 고민이 한 번에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어린 소년 기벤라트는 얼마나 훌륭하게 성장했는가!
 
수레바퀴 아래서(세계문학전집 102)(양장본 HardCover)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의 사춘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 총명하고 기품있는 한 소년이 어른들의 비뚤어진 기대,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기성사회와 규격화된 인물을 길러내는 교육제도에 희생되어 결국 순수한 본성을 잃어버리고 삶의 수레바퀴 아래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3.02.08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줄거리

소설은 독일 조그마한 시골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중개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마을의 영재입니다. 공부를 아주 잘하기 때문에 아버지뿐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에게도 인정받는 학생입니다. 당시 독일에서 출세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성직자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한스 기벤라트 역시 성직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리고 한스의 노력으로 신학교에 2등이라는 쾌거를 거두며 입학합니다. 2등 입학자로서 신학교 선생님, 학생, 마을 사람들 모두에의 응원과 기대 속에 한스는 모범생으로 학교 생활을 합니다. 

 

어느날, 한스는 하일러라는 친구를 사귑니다. 하일러는 한스와 다르게 시를 좋아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반항기 가득한 학생입니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신학교 모든 사람들은 하일러를 문제아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한스는 자신과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하일러에게 점점 매력을 느끼고 가깝게 어울려 지냅니다. 하일러는 기숙사의 규율과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퇴학을 당합니다. 이후 한스는 계속해서 성적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로 인한 기력 쇠퇴까지 겪게 되며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지경에 이릅니다. 고향에 돌아온 한스는 금속 숙련공으로 근근히 살아가게 됩니다. 어느날, 한스는 함께 일하는 수련공들과 술을 마신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익사한 채로 발견됩니다. 

 

국가가 학생들에게 베푸는 은혜에 학생들은 규율을 엄격히 지키는 것으로 보답해야만 했다.

 

<수레바퀴 아래서> 서평 - '한스'의 죽음에 대하여

 

헤세의 소설 <데미안>이 한 소년의 내적 성장을 다룬 소설이라면 <수레바퀴 아래서>는 한 소년의 낙오를 다룬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 "수레바퀴"는 단 한 번 소설에서 등장합니다. 성적이 계속 떨어지는 한스와 그런 한스를 훈계하는 교장선생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럼 됐어. 피곤하지 않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에 깔리고 말테니까"

교장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수레바퀴는 거대한 사회시스템, 한 개인의 인생 전반의 시간,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인생 등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 교장선생님의 말처럼 주인공 한스는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고 말았습니다. 교장선생님은 한스를 향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성실히 규칙과 규율을 따르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일탈을 하면 수레바퀴에 깔릴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한스를 수레바퀴 아래 놓이게 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 요인이 바로 이것들이었을까요?

 

한스의 성장과정과 그리고 죽음이라는 결말을 놓고 보면 한스의 자아는 이미 손상된 상태입니다. 자아가 손상되었다는 것은 삶의 목적과 방향, 가치관과 태도가 불명확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에게 자아란 고유의 것입니다. 개별성을 가지게 하고 주체성을 가지게 하는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한스의 자아는 한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스의 정체성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한스의 자아가 손상된 이유를 찾는다면 한스를 수레바퀴 아래 놓이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기 가는 저 사람들도 이 아이를 이 지경에 빠뜨리는 데 한 몫을 했죠

 

두 가지 자아의 손상 : 타인, 자신

첫 번째 요인은 타인에 의한 자아의 손상입니다. 

한사는 어릴 때부터 '두통'을 가지고 삽니다. 한스가 공부 할 때, 시험을 치를 때, 시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사람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한스는 두통을 겪습니다. 사실 한스는 공부에 재능은 있지만 흥미는 다른 곳에 있는 소년입니다. 낚시를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소년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도, 마을 목사님도 한스가 낚시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반응을 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나서 얘기하는 소년의 말을 끊고 공부와 출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합니다. 신학교에 입학하는 동기도 영혼을 구제하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목사의 '소명'이 아닌 '출세'가 동기입니다.

 

한스의 미래와 직업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마을 이웃 구두수선장 뿐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 한스마저 자신의 미래, 소명, 직업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한스는 그것에 대해 고민해본적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미래와 소명, 직업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 의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선생님들에 의해 강제되고 주입된 타인의 꿈이었을 것입니다. 

 

두번째 요인은 자신에 의한 자아의 손상입니다. 

한스는 소위 도태된 사람, 뒤쳐지는 사람에 대해 '경멸'의 감정을 가집니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릴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신학교까지 입학한 그는 저들과 다르다는 우월의식이 있었습니다. 한스의 세계관에서 사람들은 수레바퀴 위에 있는 사람과 아래 깔린 사람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적어도 신학교 입학 전까지 자신은 수레바퀴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했을 겁니다. 한스는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조언하는 구두수선장이의 말보다 박식하고 유능한 마을 목사를 더 신뢰합니다. 신학교에 들어가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친구 하일로에게 매력을 느껴 그 우울함과 반항심을 흉내내기도 하지만 하일로가 학교를 떠난 후 그는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한스는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알지 못한 채 시간을 내버렸고 결국 자신이 속해있는 신학교에서 도태되었을 때 모든 사회에서 자신이 도태되었다고 믿었습니다. 믿었던 꿈을 잃어버린 순간 한스는 그 스스로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1등을 하지 못한 것이 속상할 따름이었다.

 

▣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vs  영화 <라이온킹>

영화 <라이온킹>에는 '라피키'라는 원숭이가 등장합니다. 라이온킹의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아기 사자 심바가 태어났을 때 절벽 위에서 모든 동물들을 향해 심바를 들어 올렸던 바로 그 장로 원숭이입니다. 영화 속 라피키는 이런 말을 합니다.

"과거는 아픈 거지. 하지만 넌 그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고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어."

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 절대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세상에 얽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괴리감과 상처 속에서 우리는 장로 원숭이 라피키의 말처럼 도망치냐 극복하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나의 미래를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수레바퀴 위를 걸을 수 없다면 그 수레바퀴로부터 뛰어 내려 다른 수레바퀴로 향해야 합니다. 

 

한스에게 수레바퀴는 너무 거대했고, 무거웠고, 그의 전부였습니다. 누군가 한스에게 이 수레바퀴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면, 수레바퀴가 무섭다면 다른 곳으로 가도 된다고, 수레바퀴에 널 맞출필요 없다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요. 성직자가 되어야 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연과 낚시를 좋아하는 호기심 많고 심성이 여린 소년으로 봐줬더라면 어땠을까요. 우리 주변에 있는 한스들을 향해 우리는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게 조심해라고 말해야 할까요 아니면 수레바퀴 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해야 할까요. 

선생들은 한 명의 천재보다 열 명의 얼간이를 원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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