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세상은 고양이한테 맡기고 인간들은 구경이나 하렴.
▣ 소설 <문명> : 고양이 3부작
프랑스가 낳았지만 한국이 길렀다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의 상상력이 이제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소설 <문명>은 고양이 3부작으로 불리는 시리즈 중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고양이 시점에서 인간의 문명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 그리고 파괴 후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고양이 3부작은 고양이 바스테트를 주인공으로 하여 1부 <고양이>, 2부 <문명>, 3부 <행성>으로 되어있습니다. 현재 이 모든 시리즈는 출간된 상태이기 때문에 순서에 따라 읽으시면 완결을 볼 수 있는 3부작입니다.
아무래도 고양이의 위대한 역사부터 간단히 서술하는 게 좋겠지. 도입부에 넣기에 알맞은 내용 아닐까?
소설 <문명>의 배경은 이미 인간세계가 몰락한 이후입니다. 인간 문명은 테러, 내전, 범죄,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주인공 고양이인 바스테트와 그의 주인, 과학 실험으로 인해 이마에 칩을 꽂고 있는 천재 고양이 피타고라스 중심으로 사건을 일어납니다. 피타고라스는 동물 실험으로 인해 이마에 칩이 꽂혀있고 이 칩으로 인터넷망의 모든 정보와 지식을 습득합니다. 지식과 정보가 많은 이 피타고라스를 바스테트는 은근히 존경하고 있습니다. 바스테트는 인간의 '글', '지식'을 동경하기 때문입니다. 바스테트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은 곧 지식의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스테트는 글을 읽고 쓰고 나아가 인간처럼 유머, 웃음까지 배우고 싶어합니다.
완벽하게 글을 읽게 되면, 그 다음에는.. 글을 써볼 거야! 모름지기 꿈은 크게 꿔야 하는 법이니까.
▣ 에피소드: 동물 재판
소설에서 주인공 무리(인간+고양이+기타 동물)의 적은 '쥐'입니다. 이제 쥐들은 거대한 무리를 이루며 최상위 포식자가 되려고 합니다. 어떤 도시 속 고양이 무리들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자부하면서 주인공 무리와 연합하길 거부하다 결국 '쥐'에 의해 참해당하기도 합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연이어 나오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에피소드는 '동물의 재판' 장면이었습니다. 그 도시는 '돼지'에 의해 장악된 도시입니다. 그 중 도시의 왕인 돼지는 피타고라스처럼 동물 실험체로 똑같이 이마에 칩이 달려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지식과 정보를 습득했고 그 도시를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이 돼지 공동체에서는 항상 재판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인간에 대한 재판은 아주 상세하고 혹독하게 이루어집니다. 포로로 잡히게 된 주인공 무리도 이 재판에 서게 됩니다. 인간의 재판과 똑같이 변호사, 검사, 판사 그리고 배심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유죄를 주장하는 검사는 인간들의 도축장, 육가공 공장, 돼지 사육 농장 등을 들먹이면서 배심원들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유죄를 주장하는 증인들이 등장합니다. 소, 거위 등 다른 동물들입니다. 배심원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인간의 유죄를 주장합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필요만을 위해 우리들을 고문, 이용하고 버렸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인류가 결국 멸망하고 우리의 문명이 파괴되어 인간의 종이 아닌 다른 종들도 그들만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의 종은 어떤 주장을 해야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을까요?
이전에도 인간 포로들에 대한 재판이 있었고, 아주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졌다고 폐하가 말씀하셨어요.
▣ '인간'이라는 '종'에 대하여
현재 피라미드 가장 위에 존재하고 있는 종은 인간입니다. 지구 속 다양한 종들 중 왜 하필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 역시 다양합니다. 종교, 문화, 도구, 감성, 언어 등.
그러나 소설 속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어서 다른 동물과 연합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고 심지어 인간의 적은 '쥐'로 등장합니다. 인간의 몸은 도망치기에 날렵하지 않고 숨기에는 너무 거대하며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종으로써 '무죄'를 주장하는 유일한 대책은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며 다음 세대에 전하려고 하는 의지를 주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사건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하고 가공하여 의미를 부여한 후 다시 재전파하는 것을 계속해서 해왔기 때문입니다. 다음 세대들은 그 전파된 지식을 받아 다시 정리하고 가공하여 의미릉 부여하고 또 다시 다음 세대에게 전파합니다. 그렇게 인간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소설 속 인간들이 문명이 멸망한 후에도 계속해서 지식을 보존하려고 하는것처럼요.
소설 속 세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닙니다. 최상위 포식자도 아닙니다. 다른 종과 연합해야지만 살아남는 종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본다면 인간은 주인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라는 착각으로 세상을 보았고 살았기 때문에 소설 <문명>에서 몰락을 맞이한 게 아니었을까요.
유머와 예술과 사랑을 깨달은 내가 당신들을 묘류의 세상으로 인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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