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관절은 연골과 윤활액 대신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기화학 제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뇌에 뉴런 대신 회로가 있다는 것 등의 차이들이 있겠지만
▣ 소설 <작별 인사> vs 철학책 <죽음이란 무엇인가>
<작별 인사>는 '살인자의 기억법'으로도 잘 알려진 김영하 작가의 소설입니다. 감성이 가득할 것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인류의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SF소설입니다. 소설 속 사람들은 '휴머노이드'라는 로봇과 살아가고 있고 로봇 애완 기계를 키우며 로봇을 입양하여 자녀처럼 기르기도 합니다. 다른 SF소설이 그러하듯 로봇과 기계가 등장하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가득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점은 이 책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설을 읽으며 생각난 또 다른 책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철학자 셀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셀리 케이건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중 한명입니다. 그의 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오직 철학적, 이성적 논리로만 죽음에 대해 논증하는 책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 인사>역시 '죽음'에 대해 논증하고 있는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과 유사한 기계를 등장시키면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이야기를, 이를 통해 과연 인간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처럼 다가왔습니다.
당신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고자 합니까?
▣ <작별 인사>를 통해 본 죽음에 대한 2가지 질문
<작별 인사>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3명은 기계이고 1명만 인간입니다. 4명은 모두 '죽음'에 대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 철이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닮게 만들어진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입니다.
민이는 주인의 무관심과 학대 속에 자란 입양후 버려진 로봇입니다.
달마는 이성적이고 논리적 사고를 가진 로봇입니다.
마지막 선이는 인공배양을 통해 장기기증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간입니다.
4명은 모두 죽음에 대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은 삶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이란 게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 죽음에 대한 첫 질문 : '나'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저자 셀리 케이건은 독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중 하나의 질문이 이것입니다.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내 정체성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람은 육체적 죽음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육체적 죽음 뒤 영혼으로 지속하는가. 그렇다면 육체는 어디까지를 '나'라고 규정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며 영혼은 어디까지를 '나'라고 규정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인가. 죽음은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 철이는 인간처럼 보입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도, 철이 본인마저도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습니다. 몸은 피부로 덮여있고 상처가 나면 아파하고 피도 납니다. 가여운 새가 죽었을 때 철이는 아파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새를 묻어줍니다. 철이는 잠을 자기도 하고 심지어 꿈을 꾸기도 합니다. 음악을 듣고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철이가 인간이 아닌 기계임인 객관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들이 나오며 철이는 혼란스러워합니다. 철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다 언젠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은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살과 피로 이루어져 있고 피곤을 느끼며 잠을 자고 잠을 자면 꿈을 꾸고 일어나 아침 햇살을 바라볼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 생각을 하고 사유를 하며 고민과 괴뇌의 연속을 하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요? 오직 인간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인간의 유일성과 개별성을 결정짓는 '영혼'이라는 존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걸까요?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이들도 인간이 심어놓은 죽음에 대해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신까지 믿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토록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면, 어째서 그들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
◑ 죽음에 대한 두 번째 질문 : 죽음은 나쁜 것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셀리 케이건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죽음은 나쁜 것인가?"
소설 속 인물 민이는 경찰을 피해 도망가던 중 죽음을 맞이합니다. 기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중앙회로가 끊겨 다시는 복수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철이와 선이는 그런 민이를 살리기 위해 기계 달마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나 달마는 오히려 철이와 민이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그게 정말 이 휴머노이드를 위한 거라고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이 휴머노이드가 앞으로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도 모르면서요."
민이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했기에 달마는 민이가 차라리 죽는편이 낫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민이의 죽음은 민이의 것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타인이 민이의 생명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생명이 생명을 살리는 것은 다른 시선에서 보면 비윤리적인 선택이라 말합니다. 달마에게 죽음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선이는 그런 달마의 주장에 반박합니다. 민이는 기계지만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했으며 삶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었지만 그것이 삶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선이는 태어난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고 태어난 모든 이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이에게 죽음은 나쁜 것입니다. 박탈입니다. 죽음이란 살아 있다면 얻을 수 있는 좋은 모든 것을 박탈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나쁜 것으로 이해합니다.
실제로 선이는 다른 인간들과 다른 선택을 합니다. 아주 먼 미래 결국 많은 인간들은 표면상은 아니겠지만 의미상으로는 죽음인 것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선이는 인공배양으로 만들어진 탓에 온갖 질병을 안고 살아가야하지만 살아가는 그 삶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삶에 있는 고통과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안고 살아갑니다. 고통과 괴로움 너머에 있는 삶의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로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감정과 윤리를 가진, 진짜 마음이 있는 휴머노이드가 이 냉혹한 세계에서 파멸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인간을 창조한 신이 정말 있다면 이런 고통을 겪었겠구나, 아니 겪고 있겠구나.
▣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닮고 싶어하는 기계와 기계를 닮고 싶어하는 인간. 이 두 존재의 간극에 있는 4명의 인물을 통해 죽음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죽음을 고민하지 않고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개념을 말하기 위해서는 정반대 위치에 서있는 개념 또한 말해야하니까요. 우리는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죽음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나는 선이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이야말로 인간다운 것이 아닌가. 선이가 충분히 인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충분히 인간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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