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리뷰

[도서 리뷰] 김영하, <작별 인사> - 기계와 인간을 구분짓는 것

by 제이네스(Jness) 2023. 3. 22.
반응형

김영하 - 작별 인사

점차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관절은 연골과 윤활액 대신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기화학 제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뇌에 뉴런 대신 회로가 있다는 것 등의 차이들이 있겠지만

 

▣ 소설 <작별 인사> vs 철학책 <죽음이란 무엇인가>

<작별 인사>는 '살인자의 기억법'으로도 잘 알려진 김영하 작가의 소설입니다. 감성이 가득할 것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인류의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SF소설입니다. 소설 속 사람들은 '휴머노이드'라는 로봇과 살아가고 있고 로봇 애완 기계를 키우며 로봇을 입양하여 자녀처럼 기르기도 합니다. 다른 SF소설이 그러하듯 로봇과 기계가 등장하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가득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점은 이 책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설을 읽으며 생각난 또 다른 책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철학자 셀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셀리 케이건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중 한명입니다. 그의 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오직 철학적, 이성적 논리로만 죽음에 대해 논증하는 책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 인사>역시 '죽음'에 대해 논증하고 있는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과 유사한 기계를 등장시키면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이야기를, 이를 통해 과연 인간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처럼 다가왔습니다. 

당신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고자 합니까? 

 

 
작별인사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 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 『작별인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의 여정을 좇는다. 유명한 IT 기업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쾌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정신적, 신체적 위기에 직면한다. 동시에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고 따뜻한 우정도 싹틔운다. 철이는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작별인사』의 탄생과 변신, 그리고 기원 『작별인사』는 김영하가 2019년 한 신생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으로부터 회원들에게 제공할 짧은 장편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집필한 소설이다. 회원들에게만 제공하는 소설이라는 점은 『살인자의 기억법』 발표 이후 6년이나 장편을 발표하지 못했던 작가의 무거운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작업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2020년 2월, 『작별인사』가 해당 서비스의 구독 회원들에게 배송되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420매 가량이었다. 원래 작가는 『작별인사』를 조금 고친 다음, 바로 일반 독자들이 접할 수 있도록 정식 출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2020년 3월이 되자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뉴욕의 텅 빈 거리에는 시체를 실은 냉동트럭들만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서 있었고, 파리, 런던, 밀라노의 거리에선 인적이 끊겼다. 작가들이 오랫동안 경고하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갑자기 도래한 것 같았다. 책상 앞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썼던 경장편 원고를 고쳐나가던 작가에게 몇 달 전에 쓴 원고가 문득 낯설게 느껴진 순간이 왔다. 작가는 고쳐쓰기를 반복했고, 원고는 점점 2월에 발표된 것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팬데믹은 겨울이 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고, 백신이 나와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작가는 『작별인사』의 개작을 마쳤다. 420매 분량이던 원고는 약 800매로 늘었고, 주제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가르는 경계는 어디인가’를 묻던 소설은 ‘삶이란 과연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팬데믹이 개작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원래 『작별인사』의 구상에 담긴 어떤 맹아가 오랜 개작을 거치며 발아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치 제목이 어떤 마력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자기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로 다시 쓰도록 한 것 같은 느낌이다. 탈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야 비로소 애초에 내가 쓰려고 했던 어떤 것이 제대로, 남김 없이 다 흘러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_’작가의 말’에서 전면적인 수정을 통해 2022년의 『작별인사』는 2020년의 『작별인사』를 마치 시놉시스나 초고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김영하의 이전 문학 세계와의 연결점들이 분명해졌다. 제목을 『작별인사』라고 정한 것은 거의 마지막 순간에서였다. 정하고 보니 그동안 붙여두었던 가제들보다 훨씬 잘 맞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작별인사’라는 제목을 내가 지금까지 발표한 다른 소설에 붙여 보아도 다 어울린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빛의 제국』, 심지어 『살인자의 기억법』이어도 다 그럴 듯 했을 것이다. _’작가의 말’에서
저자
김영하
출판
복복서가
출판일
2022.05.02

▣ <작별 인사>를 통해 본 죽음에 대한 2가지 질문

<작별 인사>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3명은 기계이고 1명만 인간입니다. 4명은 모두 '죽음'에 대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 철이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닮게 만들어진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입니다. 
민이는 주인의 무관심과 학대 속에 자란 입양후 버려진 로봇입니다. 
달마는 이성적이고 논리적 사고를 가진 로봇입니다. 
마지막 선이는 인공배양을 통해 장기기증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간입니다. 
4명은 모두 죽음에 대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은 삶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이란 게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 죽음에 대한 첫 질문 : '나'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저자 셀리 케이건은 독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중 하나의 질문이 이것입니다.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내 정체성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람은 육체적 죽음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육체적 죽음 뒤 영혼으로 지속하는가. 그렇다면 육체는 어디까지를 '나'라고 규정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며 영혼은 어디까지를 '나'라고 규정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인가. 죽음은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 철이는 인간처럼 보입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도, 철이 본인마저도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습니다. 몸은 피부로 덮여있고 상처가 나면 아파하고 피도 납니다. 가여운 새가 죽었을 때 철이는 아파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새를 묻어줍니다. 철이는 잠을 자기도 하고 심지어 꿈을 꾸기도 합니다. 음악을 듣고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철이가 인간이 아닌 기계임인 객관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들이 나오며 철이는 혼란스러워합니다. 철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다 언젠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은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살과 피로 이루어져 있고 피곤을 느끼며 잠을 자고 잠을 자면 꿈을 꾸고 일어나 아침 햇살을 바라볼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 생각을 하고 사유를 하며 고민과 괴뇌의 연속을 하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요? 오직 인간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인간의 유일성과 개별성을 결정짓는 '영혼'이라는 존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걸까요?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이들도 인간이 심어놓은 죽음에 대해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신까지 믿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토록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면, 어째서 그들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

 

◑ 죽음에 대한 두 번째 질문 : 죽음은 나쁜 것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셀리 케이건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죽음은 나쁜 것인가?"
 
소설 속 인물 민이는 경찰을 피해 도망가던 중 죽음을 맞이합니다. 기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중앙회로가 끊겨 다시는 복수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철이와 선이는 그런 민이를 살리기 위해 기계 달마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나 달마는 오히려 철이와 민이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그게 정말 이 휴머노이드를 위한 거라고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이 휴머노이드가 앞으로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도 모르면서요."
민이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했기에 달마는 민이가 차라리 죽는편이 낫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민이의 죽음은 민이의 것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타인이 민이의 생명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생명이 생명을 살리는 것은 다른 시선에서 보면 비윤리적인 선택이라 말합니다. 달마에게 죽음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선이는 그런 달마의 주장에 반박합니다. 민이는 기계지만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했으며 삶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었지만 그것이 삶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선이는 태어난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고 태어난 모든 이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이에게 죽음은 나쁜 것입니다. 박탈입니다. 죽음이란 살아 있다면 얻을 수 있는 좋은 모든 것을 박탈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나쁜 것으로 이해합니다. 
 
실제로 선이는 다른 인간들과 다른 선택을 합니다. 아주 먼 미래 결국 많은 인간들은 표면상은 아니겠지만 의미상으로는 죽음인 것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선이는 인공배양으로 만들어진 탓에 온갖 질병을 안고 살아가야하지만 살아가는 그 삶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삶에 있는 고통과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안고 살아갑니다. 고통과 괴로움 너머에 있는 삶의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로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감정과 윤리를 가진, 진짜 마음이 있는 휴머노이드가 이 냉혹한 세계에서 파멸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인간을 창조한 신이 정말 있다면 이런 고통을 겪었겠구나, 아니 겪고 있겠구나.

 

▣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닮고 싶어하는 기계와 기계를 닮고 싶어하는 인간. 이 두 존재의 간극에 있는 4명의 인물을 통해 죽음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죽음을 고민하지 않고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개념을 말하기 위해서는 정반대 위치에 서있는 개념 또한 말해야하니까요. 우리는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죽음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나는 선이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이야말로 인간다운 것이 아닌가. 선이가 충분히 인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충분히 인간이란 말인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