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떤 책인가?
이탈리아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미칼란젤로는 어느 날 교황청 추기경의 의뢰를 받아 하나의 유명한 작품을 완성시킵니다. 바로 '피에타'입니다. 피에타는 성모마리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의 시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작품입니다. 처음 이 '피에타'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을 때 일부 비판의 시각이 있었습니다. 작품을 정면에서 보면 주인공이어야 하는 예수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고 성모 마리아의 모습만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피에타'를 조각한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답변하였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신을 위해 만든 작품이다. 인간의 눈으로 평가하지 말라."
이제 우리의 시선은 사람들이 관찰하는 정면이 아닌 신의 시선 즉, 위에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시선이 위에서 시작하자 성모마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온통 예수의 모습만 보입니다. 예수의 얼굴, 축 늘어진 팔과 다리 그리고 인류의 구원을 위한 아들의 죽음을 본 아버지 신의 시선. 그제야 신의 관점이 보입니다. 그때부터 작품은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됩니다.
관점이란 이런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는 것.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바로 이 '관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의 관점과 그 관점으로 인해 시작된 신념을 쫓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관점이 얼마나 낮아질 수 있는지, 인간의 신념이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 그 발가벗은 낯면을 보여줍니다.
모든 자(ruler) 뒤에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전문기자인 룰루 밀러(Lulu Miller)에 의해 쓰여진 책입니다. 룰루 밀러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어느 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한 분류학자를 알게 됩니다. 데이비드는 미국에서 1851년 태어난 인물로 교수이자 과학자, 분류학자입니다. 특히 그는 어류 분류학자로 인류에게 알려진 물고기 가운데 데이비드와 그의 제자들이 발견한 어류만 2,500여 종 이상이 될 정도로 어류 1/5를 발견하고 분류한 아주 유명한 분류학자입니다. 데이비드의 삶과 업적에 매력을 느낀 룰루 밀러는 그의 인생을 되짚어보며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책의 전반부는 저자가 추적하고 발견한 데이비드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로 데이비드의 자서전 느낌입니다. 데이비드가 언제부터 세상 '종류'에 흥미가 있었고 그 흥미를 어떻게 업적으로 남겼는지 어떻게 어느 방식으로 연구를 하였는지 어류 분류학자로서의 데이비드를 보여줍니다.
▣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줄거리
데이비드는 어릴때부터 작은 것에 관심을 주고 사랑을 주는 아주 반짝이는 소년이었습니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산에 피는 풀, 이름 없이 피어난 들에 있는 꽃, 하늘을 빼곡히 채운 수만 개의 별 등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뜻도 의미도 없는 그런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이름대로 분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존경하는 과학자 아가시를 따라 페니키스 섬에 도달합니다.
작은 것들은 아름답지는 않아도 단 한 종류의 큰 꽃 백송이보다 내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과학자 아가시는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숨겨있는 '신의 생각'을 밝혀 내고자 목적을 둔 과학자였습니다. 창조주인 신은 이 세상을 만들 때 그의 생각을 모든 피조물에 숨겨놓았고 인간인 우리가 그 피조물을 분석하고 가려내면 마침내 신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관점으로 '신성한 사다리'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성한 사다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구상된 개념으로 자연계의 위계질서를 파악하고 배열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데이비드는 아가시의 영향을 받습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종을 분류함으로써 신의 생각을 나아가 인류의 궁극적 방향을 알아내고자 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를 자신의 삶의 방향으로 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분야를 '어류'로 정합니다.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본성이 어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고 도덕적으로 얼마나 졸렬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굳센 신념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 연구실의 화재 등으로 데이비드가 분류하고 이름 붙였던 수많은 물고기 표본이 훼손되거나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전 세계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물고기를 분류하고 새로운 물고기를 발견해 갑니다.
자, 여기까지 책을 쓰는 저자 룰루 밀러도, 책을 읽는 독자 우리들도 데이비드를 위대하고도 대단한 과학자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책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저자에게도 우리에게도 한 가지 '의심스러운' 데이비드의 정황이 포착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데이비드의 적 '제인'의 수상스러운 죽음입니다.
그리고 세계는, 그 거대한 세계는, 조용히, 참을성 있게 앉아서 그가 틀렸음을 증명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데이비드의 위치와 명성을 공격했던 제인이 독살됩니다. 데이비드가 실제로 제인을 독살하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수상스러운 흔적이 있었고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고 인정할만한 물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당시 데이비드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이 모든 것을 덮었다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데이비드 행위에 대한 의심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뒤에 이어지는 데이비드의 행위는 추측이 아닌 사실이고 의심이 아닌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행위는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기 합당합니다.
저자는 데이비드 삶을 쫓아가던 중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합니다. 데이비드가 그의 스승 아가시와 의견을 달리하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이때부터 저자 역시 데이비드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을 달리하기로 결심합니다. 데이비드의 주장과과 논리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던집니다.
데이비드가 주장했던 그의 관점, 논문과 책을 통해 세상을 설득하려 했던 그의 신념, 이미 훌륭한 과학자로 명성있던 그의 권위와 지위를 이용해 결국 미국 땅에 보급해 버린 그의 주장. 바로, "우생학"입니다.
전 세계에서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고 권고하는 책. 겨우 몇 십년 전에 처음 생겨난 한 단어에 과도하고 의존하는 책이었다. 1916년 매디슨 그랜트라는 한 미국 남자(나중에 히틀러라는 한 독일 남자가 자신의 '성경'이라고 부르게 될)가 우생학 책 한 권을 출판했다.
데이비드는 이 '우생학'을 미국에 보급하고 법을 개정하게 만듭니다. 그가 보기에 '부적합자'를 한 공간에 가둬 놓고 모두 불임으로 만들어 대를 끊어버리게 하는 최악의 정책을 펼치게 합니다. 생명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생명을 분류하며, 생명의 진화를 인간 관점 하나를 놓고 결정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 관점을 포기하지 않았고 실제로 미국 전 지역에서 공공연하게 혹은 비밀리에 불임이 강제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적합자'의 이유로 생명과 성, 노동력을 빼앗깁니다.
오싹했다. 그 잔인성과 무자비함이. 그 추락의 무지막지한 깊이와 그 파괴적 광란의 크기가
저자는 작은 것을 사랑했던 소년이 왜 생명을 파괴하는 사람으로 변했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위대한 과학자로 뒤쫓았던 그의 일생을 다시 한 번 객관적인 관점으로 뒤쫓습니다. 데이비드의 성격과 성품, 성장과정을 다시 파악해 보고, 그의 소명이 처음으로 꿈꿔졌던 페니키스 섬의 일화를 재조명하며 데이비드 주변 인물들과 결정적 사건들을 다시 뒤쫓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었던 데이비드의 성격이 모든 혼돈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착각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스승의 '자연의 사다리'가 우성과 열성을 분류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으로 변질되는 것을, 데이비드의 소명이었던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가 불임화라는 극단적 수단으로 결론짓게 되는 것을 포착하게 됩니다.
그 물고기들 중 다수가 사실은 그의 우생학 캠페인이 표적으로 삼고 있던 이들-그가 사회에 아무 가치도 없다고 무시했던 이민자들과 '빈민들'-이 발견한 것이라는 사실을 데이비드는 의도적으로 과학적 기록에 남기지 않았다
그는 그의 신념대로 자연을 순리대로 분류하고, 물고기를 합당하게 분류하였을까요? 놀랍게도 그가 죽은 이후 한 충격적인 이론이 등장합니다. 데이비는 죽는 순간까지 높은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가져갑니다. 그는 행복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이후 그의 신념은 완전히 파괴됩니다. 그가 평생을 바쳐 노력해 온 자연으로부터, 평생을 바쳐 연구해 온 물고기로부터 말입니다. 그가 죽은 이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이론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이론입니다. 한국인 교수 '캐럴 계숙 윤'에 의해 물고기를 분류하는 종을 일컫는 어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단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인간의 직관으로 물고기를 어류라는 종으로 묶어버렸지만 사실, 물고기들의 분류는 어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분류학자들의 주장입니다.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들 중 다수가 물고기가 아닌 포유류와 가까운 관계임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출판된 6개월 후, 스탠퍼드 대학과 인디애나 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변경하기로 결정합니다. 진실을 알게 된 수많은 학생들과 교직원, 임직원들의 항의에 의한 결과였습니다. 그는 이제 그의 신념 그리고 명성까지 모두 잃어버립니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생각 ; 인간의 직관이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는가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기차가 직선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선로는 직선으로만 되어있지 않고 굽어져 있습니다. 달리는 기차 안 사람들은 자신이 굽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신념은 아마 이러한 것 같습니다. 굽은 곳을 가고 있지만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는 이상 자신의 길이 곧다고 여기는 것, 옳다고 여기는 것.
데이비드는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작은 것을 사랑했던 그 소년은 자신이 타고있는 기차의 종착역이 우생학이 될 것이라 상상조차 못 했을 것입니다. 그가 느끼는 것은 흔들림 없이 직선으로 가는 기차였고 그가 본 풍경은 선로 옆 곱게 뻗은 풍경뿐이었을 테니까요. 인간의 관점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느낌과 보는 것을 1차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러기에 물고기마다 각 분류가 달라져야 했음에도 수천 년 동안 인간은 물고기의 종을 어류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세상은 자신을 소개할 때가 있습니다. 그저 자기소개일 뿐인데 소개에 충격을 받는 건 오직 인간 뿐입니다.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별이 아닌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에 의해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양자역학에 의해 세상의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세상 모든 종류 중 인간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눈으로 본 세상은 세상 자신이 스스로 소개해주는 세상과 너무 다르게 보입니다. 인간의 직관으로 본 세상은 정반대의 세상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인간의 직관은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는걸까요. 우리의 신념과 세계관이 사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어떻게 되돌려야 하는 걸까요. 데이비드 스승 아가시의 말처럼 우리는 자연 앞에 겸손하게 한 없이 낮은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직관과 신념, 가치관이 세상 앞에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알아가야 합니다.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 프레드리히 니체
'도서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 리뷰] 사이먼 싱,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300년 동안 풀지 못한 공포의 방정식 (49) | 2023.03.21 |
---|---|
[도서 리뷰]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단편선 (40) | 2023.03.20 |
[도서 리뷰]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 영화 <오토라는 남자> 원작 도서 (24) | 2023.03.18 |
[도서 리뷰]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휴머니즘 의학 서적, 요약, 상세리뷰 (24) | 2023.03.17 |
[도서 리뷰] 카를로 로벨리, <모든 순간의 물리학> - 가장 아름다운 직관.(과학, 물리학, 양자역학) 요약 및 후기 (18) | 2023.03.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