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국가의 표어
[공동, 균등, 안전]
▣ 소설 <멋진 신세계>의 '과학'이란 -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과 비교하여
소설 <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로 조지오웰의 <1984>,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미아친 <우리들>과 더불어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힙니다. 미래사회를 풍자하여 낸 소설입니다. 소설의 배경에서는 고도로 발달된 과학 문명으로 태아를 인위적으로 대량 배양하고 태어날 때부터 국가 사상을 주입합니다. 태아는 유리병 속에서 자라나고 전기고문으로 책과 꽃의 거부감이 세뇌됩니다.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소마라고 불리는 마약으로 조절되고 사람들은 서로 사랑을 공유합니다. 이러한 체계 속에서 이들은 스스로의 국가를 유토피아라고 자부합니다.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은 흔적을 남긴다"라고 말합니다.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모든 의사결정과 정책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책 자체에 대한 결과뿐 아니라 결과가 도출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판단, 우선순위, 가치관 등이 반영되고 그 반영이 다시 사람들의 판단, 우선순위, 가치관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이 소설 속 저자 올더스 헉슬리도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과학 맹신은 흔적을 남긴다". 소설 속 미래 사회인 세계 국가에서의 표어는 [공동, 균등, 안전]입니다. 세계 국가는 '명령법' 아래 있습니다. 표어를 풀어 설명하자면 이렇게 설명될 것 같습니다.
공동: 모든 것을 공유하고 모든 것을 소비하라
균등: 동일함으로 언제나 행복하라
안전: 통제된 오늘은 예측 불가한 불행을 잠식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유토피아인가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과학입니다. 과학 기술은 공동과 균등, 안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과학은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세계 국가의 명령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공동: 사랑을, 꿈을, 감정을 공유하라, 사랑을, 꿈을, 감정을 소비하라
균등: 동일함은 대체 가능함으로 너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안전: 통제는 자유를 억압하고 권리를 빼앗는다
과학이 남긴 이 흔적의 진짜 공포는 무지입니다. 사람들은 흔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결론이 도출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결론의 결론으로 '멋진 신세계'가 탄생될 때까지 세계 국가의 국민들은 아무도 갯벌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갯벌은 사라지고 물로 덮인 바다가 된다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신세계 사람들은 발 디딜 곳 없이 물로 덮인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 <멋진 신세계>의 미래모습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티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업 유지하는 것에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다."
키티 선생의 말에 신세계 사람들은 동의할까요?
시보다 표어를, 아름다움보다 효율성을, 낭만보다 사회화를, 사랑보다 공유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 '당연한' 것이니까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멋진 신세계는 신세계로 머물게 될까요? 포드의 패러다임이 영원히 지배적 관념으로 고정될까요? '옳다'는 것은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해왔기에 신세계 유토피아를 지배하고 있는 포드의 패러다임 역시 바뀌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더 멋진 신세계'는 어떠한 과정으로 변하게 될까요? 우리는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저 상상일 뿐이니까요.
"필요 없으니까 그것을 획득하지 않는다" 신세계의 지배적인 가치관입니다. 그들은 문명이란 '살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살균의 대상은 필연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 감소하지 않습니다. 살균의 범위가 넓을수록, 다양할수록, 많을수록 남아있는 사람에게 행복과 안전은 커지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살균의 범위는 넓어집니다. 살균으로 없어진 자리는 과학이 대체하면 됩니다. 5가지 계급은 3계급이 되고, 2계급이 되어 어느덧 1계급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계급이 줄었다는 것은 인구가 줄었다는 의미입니다. '공생'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신세계의 표어였던 [공존, 균등, 안전]은 사라지고 [나]라는 표어만 남습니다. '나' 외의 행복은 다 살균되어야 마땅하다. 오직 '나'만이 문명이다.
그렇죠. 그리고 문명이라는 것은 살균입니다.
▣ '정의'에 대한 토론 그리고 논의
우리는 올더스 헉슬리가 상상한 신세계가 우리의 미래사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상상했던 '나'만이 문명인 세계도 우리의 미래사회가 되지는 않겠죠. 그러나 신세계의 상징성을 문자로 풀어낸다면 지금 우리가 외치는 구호와 참 많이 닮아있음에 놀라게 됩니다. 효율성, 행복 추구, 국가 안녕, 사회 안정, 균등한 체계..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과 참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의'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것'과 '바람직 한'것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어야 합니다. 한 가지만 옳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갈대처럼 의견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옳지 않은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토론의 장과 논의의 장을 사랑해야할 것입니다.
자네는 불행하게 될 권리만 찾고있군 그래.
저는 불행하게 되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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